韩国诗人李陆史诗作中精神世界研究_韩语论文.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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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이육사는 항일독립운동가이면서 동시에 시인이었다. 이 점에 그의 본령이 있다. 그래서 그의 대표시로 알려지고 있는 <광야>, <절정>, <청포도>, 세 시편은 여러 견지에서 관찰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이육사의 문학 활동은 그의 항일운동의 하나의 방편이었다. 이는 그의 모든 시작품들에 거의 일관해서 항일정신이라는 의식이 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상가이며 혁명가인 노신(魯迅, 1882-1936)이 동족의 의식을 개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문학예술이라고 믿고 자신의 문학 활동을 처음부터 사상 정치투쟁과 결부시켜 나간 것에 이육사도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믿어져서이다. 여기서 이육사의 시정신도 항일독립정신에서 취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그의 시정신은 단지 항일의식에 치우친 신념이나 이상에만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 몸소 항일운동에 뛰어든 열성적인 독립운동가로서의 체험에서 형성된 것이었다. 그가 17번이나 감옥살이를 하였고 결국은 중국의 땅 감옥에서 옥사하였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육사의 문단활동기가 되는 1935-1944년의 약 10년간은 일제강점기 후기에 속한다. 일본 군국주의의 파시즘이 극도에 달해 있었던 이 시기에 한민족이 당하는 파쇼적 탄압도 그만큼 극심했다.

작가의 숙명을 ‘별(星)’이라고 한다면, 이육사의 ‘별’은 바로 ‘조국의 광복’ ‘떳떳한 자주국가로의 국권 회복’이었다. 그런데 그 일만을 ‘별’로 하여 매진하다가 이를 달성하지 못하고 생애를 마친 비극은 이육사가 문학상으로 다다른 막다른 골목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육사가 바라보는 ‘별’=‘조국의 국권희복’은 그의 생애의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별’의 추락이 그의 ‘옥사’이고, 그 ‘옥사’는 ‘별’의 상징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오늘날까지 <청포도>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가들이 논의하였다. 대체로 이육사는 청순한 감정의 소유자로서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서정의 세계를 지향하는 시인의 영혼은 멀리 있는 이상의 세계를 항상 그리워하고 있다고 하고, <청포도> 시편에서는 그러한 그리움과 기다림이라는 의미를 평화의 사상으로 상징화한 작품, 청포도가 익어가는 고향마을을 그리워하는 시, 그리고 실향의식과 비애라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었다. 또한 이육사의 시에서 보이는 낭만적 경향은 밝고 건강한 생명에 대한 지향을 지닌 것이어서, 그사의 시를 항일 저항시 일변도로만 해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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